승정원일기 57책 (탈초본 3책) 인조 15년 4월 24일 계사 16/16 기사 1637년 崇禎(明/毅宗) 10년
引見에 南斗瞻 등이 입시하여 八王이 椵島를 공격한 일, 沈世魁가 죽을 때의 처신 등에 대하여 논의함
○ 上御養和堂, 問安使南斗瞻引見, 右承旨韓亨吉, 注書柳淰, 記事官兪㯙入侍。上曰, 前見本道監·兵使狀啓, 今見爾書啓之辭, 而亦不可以細知其間事情, 今爾往來島中, 口達必詳, 爾其詳細陳達。斗瞻曰, 臣隨往八王, 果爲詳知其事情而來矣。當初則八王以攻島爲難, 而一日, 稱以出獵, 歷觀椵島諸處, 周回而還, 言於兵使曰, 吾將行舟於山上, 以攻椵島, 本國小船, 速爲覓給云云, 而卽日募兵二千, 舁舟上山, 乘霧而行, 不意掛帆, 平地行舟, 須臾踰嶺, 突出漢人之右, 而漢兵則全然不知, 以爲北軍飛渡。豈有如此而待敵之理乎? 然而㺚兵貪財急掠, 初不爲戰, 故多被漢人所殺云矣。上曰, 前聞有一總兵, 來到島中云, 其缺二行斗瞻曰, 沈世魁, 當初爲馬夫大所擒, 押來于八王前, 則沈也, 與夫大同坐而箕踞, 小無畏屈之色。夫大曰, 何不下坐耶? 沈曰, 吾豈有下坐之理乎? 只願速殺我也。夫大曰, 汝可脫衣。沈曰, 吾何以脫衣乎? 殺其人, 衣其衣, 乃汝曹常事, 殺我之後, 染血之衣, 汝可自取, 吾何以爲汝脫乎? 夫大大怒, 卽出斬之, 懸其頭於大將旗下, 至今懸在矣。上曰, 沈世魁發身於商賈中, 終至死節, 甚是忠義之人也。上曰, 椵島築城, 周回幾何? 斗瞻曰, 五里許, 高則三丈餘矣。上曰, 男丁盡爲撕殺云, 然耶? 斗瞻曰, 果盡殺矣。淸兵入島之初, 聲言曰, 欲生者剃, 欲死者不剃, 漢人聞其言, 盡自剃頭, 頭而皆不避匿, 以此, 淸人得以盡殺其男丁矣。韓亨吉曰, 島中糧食之遺在者, 幾石云耶? 斗瞻曰, 軍糧時未作石, 而幾二十餘萬石云矣。臣行禮若從容, 則欲發贖還之事, 而行禮後, 使之卽爲出去, 故不及言說。出問于金汝亮, 則曰, 皇帝旣令曰, 入瀋陽許賣云, 號令一出, 價不撓改, 不成之事, 不必言說云, 故更不說道矣。上曰, 擄來漢人, 只三四千云, 何其小乎? 斗瞻曰, 不徒太半撕殺, 幾盡投谷而死, 衆屍蔽海矣。上曰, 逃出漢人, 未知幾許耶? 斗瞻曰, 僅以身逃者若干人矣。上曰, 見平安監司狀啓, 則我兵亦參〈其〉擄掠, 兵使狀啓, 則不言我兵掠財, 未知何說是乎? 斗瞻曰, 入島之初, 我兵終不下船矣, 厥後淸人, 頗以此爲疑, 故不得已, 暫掠其米斗·靑布·麴子等若干物, 以解其疑, 而別無大段事云矣。上曰, 然則我兵參掠之說, 是矣。上曰, 所謂八王者, 年幾何, 爲人如何? 斗瞻曰, 年則三十五, 身長丈餘, 腰腹甚大矣。自勝椵島之後, 缺二行, 周回幾三十餘里, 衙門甚爲宏大壯麗, 閭舍亦缺。上曰, 男丁幾盡殺之云, 而男丁之被擄, 亦至千人云, 此則□等人也? 斗瞻曰, 聞此等人, 則乃孔·耿相知族屬云矣。曲承恩, 則生置孔·耿陣下, 蓋其親知故也。然八王之令甚嚴, 故將來必盡殺之云矣。上曰, 聞兵使贖還人物云, 贖者幾人乎? 斗瞻曰, 兵使及林慶業, 多才多能, 與八王諸人, 不爲相失, 故無價而先贖五百餘人矣。上曰, 八王以不爲慰問之意, 形於言語辭色乎? 斗瞻曰, 臣則別無目見其形色, 而累次言及於通事·兵使等處矣。臣亦以經亂之後, 國計無形, 陪臣問安, 今已稽遲等意, 措辭爲言矣。上曰, 漢人之避去者甚多云, 其人聲息如何? 斗瞻曰, 皆出外洋, 而東者東, 西者西, 任其所至, 今則漠然莫有聞矣。上曰, 棄船逃走之際, 必無所食, 可憐哉其人也。必盡死矣。斗瞻曰, 西土之人則皆曰, 漢人盡去, 吾屬可生, 而自椵島陷沒之後, 始爲農作計矣。上曰, 民雖無知, 誰爲此無理之語? 可憐哉漢人也。其後則無下陸者乎? 斗瞻曰, 厥後漢人金文載稱名者, 出來于鐵山城外, 府使使之不入, 則文載曰, 爾國何不納我乎? 累次詰責, 府使乃令入來, 則問其彼此形勢, 府使亦言其不得已之狀。文載曰, 吾亦知之矣。問答之際, 召退知之, 急來搜覓, 文載卽爲逃走, 行不及十里許, 淸人詰責甚急, 不得已送人追捕, 則文載曰, 寧死於爾國, 不須使我見死於奴庭云, 而又走不數里, 氣盡自斃云矣。上曰, 然則追之者我人乎? 斗瞻曰, 不得已我人追之矣。斗瞻曰, 近聞淸人來住九連城近處, 仍爲留屯居生云矣。上曰, 何故而然也? 斗瞻曰, 瀋陽則人物甚衆, 故使之分處居生, 如昔日漢人之居生矣。上曰, 平安道居民作農者, 果有之耶? 斗瞻曰, 有之而缺二行, 待秋出來云云。此輩曾聞華使出來之規, 其所以待秋出來云者, 必欲備禮往來故也。且以椵島戰勝之故, 奬勅, 則不久當爲出來云矣。斗瞻曰, 入島之初, 淸兵聞數隻載貨漢船, 在於山外浦口, 眞獺八十人, 解甲冑棄弓矢, 只持劍急往浦口, 則漢人先知其來, 潛匿深谷中, 淸人不知其埋伏, 直到船所, 則漢人不意隨後掩殺, 或射或砲, 盡爲斬殺, 淸人首級, 沒數斬, 載其船, 仍爲棄船而走云矣。上曰, 然則淸兵大陣, 不爲來救耶? 斗瞻曰, 其相戰處, 與大陣甚遠, 故不知其死亡矣。厥後始知其敗死, 收其屍身, 盡爲燒火矣。上曰, 陳都督出來之言, 更有所聞耶? 其言亦信乎? 斗瞻曰, 時未聞奇矣。當初漢船數隻出來, 現形於前洋, 而卽爲還入云, 今也則無之矣。遂退出。燼餘
인조 15년 (1637) 4월 24일
- 昌慶宮에 머묾。常參과 經筵을 정지함
- 光海君을 濟州로 이송할 것을 청하는 備邊司의 계
- 날이 더워 疲斃할 우려가 있으므로 여름을 지난 후에 소를 올려 보내게 할 것을 청하는 備邊司의 계
- 淸의 詰問에 대한 대답을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는 備邊司의 계
- 흩어지고 부서진 軍器 중에서 우선 鳥銃을 修補하겠다는 訓鍊都監의 계
- 光海君의 移置에 필요한 別將 등을 마련하게 할 것을 청하는 義禁府의 계
- 史官 1員을 待命시키라는 전교
- 八王에게 보낼 禮單 單子를 다시 付標하여 들인다는 戶曹의 계
- 출사하지 않은 具宏을 牌招하여 직임을 살피게 할 것을 청하는 備邊司의 계
- 瀋陽에 있는 嬪宮의 병이 중하므로 약재를 보내겠다는 內醫院의 계
- 備邊司의 犒軍 草記에 대한 전교
- 金振이 신병이 있어 左右 史官을 갖추지 못했다는 韓亨吉의 계
- 錄勳에 대해 議處하라는 명을 거두어 주기를 청하는 崔繼勳의 계
- 都摠府에서 궐내를 巡檢하겠다는 韓亨吉의 계
- 3곳의 提調를 겸임하고 있으므로 1곳의 改差를 청하는 睦敍欽의 상소
- 引見에 南斗瞻 등이 입시하여 八王이 椵島를 공격한 일, 沈世魁가 죽을 때의 처신 등에 대하여 논의함