승정원일기 162책 (탈초본 8책) 현종 1년 6월 21일 갑진 21/28 기사 1660년 順治(淸/世祖) 17년
金南重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
○ 兵批, 以金南重·趙必達爲副摠管, 金興運爲訓鍊正, 林爲都摠經歷, 金孝純爲上土僉使, 獨古義[獨孤義]爲□□僉使, 李錫祚爲赤梁萬戶, 許煒爲所斤僉使, 朴惟建爲茂山僉使, 趙方立爲加德僉使, 鄭後亮爲都摠都事, 崔晩得爲統營虞候, 黃埏爲內禁衛將, 朴長卿爲宣傳官, 柳夢弼·李瑞蓂爲部將, 權德裕·金起英·禹光續爲守門將, 李晩□·宋憲徵爲訓鍊僉正, 具翧·崔海聖爲宣傳官, 禹□□爲都摠都事, 李善行爲部將, 劉成一爲忠壯衛將, 丁尙俊爲包伊浦萬戶, 金尙鳴爲武兼宣傳官, 金汝柱爲訓鍊判官, 朴材爲宣傳官, 延閏爲武兼宣傳官, 李蘤爲部將, 李文頀爲守門將, 朴東益爲知世浦萬戶, 李希楫爲高山里僉使, 李稷爲水口萬戶, 朴亨根爲菁川召募別將, 韓夢說爲昆陽召募別將, 車永立爲永登萬戶, 李枝興爲吾叉浦萬戶, 金起俊爲武兼宣傳官, 崔克相爲會寧浦萬戶, 禹濟民爲漁游澗僉使, 金振秋爲足島萬戶, 魏天會爲全南右水虞候, 羅得星爲珍島監牧官, 金興運爲內禁衛將, 文緯地爲武兼宣傳官, 金後天爲宣傳官, 吳壽昌爲部將, 缺二行爲僉知, 方好生爲黔毛浦萬戶, 曺無敵爲南虞候, 金起英·文緯地·金尙鳴爲副司果, 李端相爲司直, 李一雄爲三千權管, 陳時達爲黃拓坡權管, 朴震英爲大坡兒權管, 李龍生爲同仁權管, 趙起昌爲楸仇非權管, 兪聖欽爲登公仇非權管, 金義逸爲加乙軒洞權管, 金興翼爲山羊會權管, 金義忠爲安原權管, 金忠俊爲斜下北權管, 胡彦光爲鎭東權管, 曺無敵·金興運爲折衝將軍, 崔廷立爲訓鍊主簿, 尹應天爲訓鍊參軍。
현종 1년 (1660) 6월 21일
- 慶德宮에 머묾。常參과 經筵을 정지함
- 햇무리와 달무리가 짐
- 有政
- 承政院에서 大殿의 안부를 물음
- 藥을 劑入하고 受針하는 일에 대한 藥房의 계
- 吏批의 관원 현황
- 兵批의 관원 현황
- 都目政을 위하여 參判 李應蓍의 命招를 청하는 吏批의 계
- 都目政에 擬望할 인원의 범위에 대한 吏批의 계
- 李應蓍가 牌招에 응하지 않았다는 李袗의 계
- 扈從에 功勞가 있는 자와 戰亡者와 淸白吏의 子孫을 各別히 收用하라는 전교
- 守令을 各別히 擇差하도록 吏曹에 말하라는 전교
- 受針할 때 金壽恒이 입시하여 李一相의 사직에 관해 논의함
- 李一相의 牌招에 관한 李景奭의 계
- 李一相이 牌招에 응하지 않았다는 金壽恒의 계
- 受針할 때에 李景奭 등이 입시하여 金重白에게 東班實職을 제수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함
- 受針日에 金壽恒이 입시하여 闕內 禁喧을 엄하게 하지 못한 兵曹 郞廳의 推考와 色吏의 從重推治에 대해 논의함
- 李惟泰의 疏辭는 齊會에서 商確한 후 登對하여 稟處하겠다는 備邊司의 계
- 敬慕殿 告由, 還安祭에 生獐 대신 生猪를 사용할 것을 청하는 禮曹의 계
- 李延年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
- 金南重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
- 金興運의 加資를 청하는 兵批의 계
- 曺無敵의 加資를 청하는 兵批의 계
- 柳後聖 등을 放釋하라는 命의 還收를 청하는 睦兼善의 계
- 柳後聖 등의 治罪와 江原道 柴場의 革罷를 청하는 郭之欽 등의 계
- 僞書의 일로 인하여 사직을 청하는 李一相의 상소
- 受針에 李景奭 등이 입시함
- 受針할 때에 李景奭 등이 입시하여 金重白에게 實職을 제수하는 일, 李一相의 僞簡에 관한 일, 科擧事目의 商議定奪 등에 관하여 논의함