승정원일기 413책 (탈초본 22책) 숙종 29년 7월 19일 계해 13/14 기사 1703년 康熙(淸/聖祖) 42년
趙興璿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
○ 兵批, 僉知單趙興璿, 僉知單申銋, 僉知單張俊, 金振漢爲牛仇里萬戶, 李仁吉爲武兼, 李應斗爲忠翊衛將, 申績爲武兼, 趙揚爲部將, 朴琳爲訓鍊僉正, 金琦振爲訓鍊習讀, 尹世挺爲宣傳官, 李彙千爲守門將, 洪禹載爲守門將, 皮後相爲林土別將, 李益壽爲副摠管, 申命相爲訓鍊主簿, 崔斗恒爲兼訓鍊習讀, 僉知單李喜茂, 李瀗爲都摠都事, 金宇杭爲副摠管, 洪以徵爲都摠都事, 李說爲訓鍊主簿, 徐宗愈爲洗馬, 李必益爲訓鍊僉正, 韓範錫爲都摠都事, 李相殷爲僉知, 强以敏爲魚游澗僉使, 李橏爲訓鍊判官, 李泰運爲訓鍊主簿, 韓以重爲宣傳官, 李聖恒爲武兼, 李命尹爲宣傳官, 具鳳昌爲兼司僕將, 車萬壽爲武兼, 李益泰爲僉知, 許欽爲神方仇非萬戶, 金廷煒爲薪智島萬戶, 李昌祉〈爲〉波知僉使, 梁武徵爲馬島萬戶, 柳㵑爲公州營將, 崔東奎爲部將, 權得平爲武兼, 金振聲爲羅州監牧官, 僉知單尹廷周, 沈逵爲仁遮外萬戶, 李學萬爲防踏僉使, 李萬全爲蛇渡僉使, 李仁碩爲東里僉使, 金鼎三爲宣傳官, 愼聖任爲訓鍊主簿, 崔烷爲都摠都事, 金重呂爲訓鍊僉正, 金周鼎爲宣傳官, 趙隨爲訓鍊主簿, 許欽爲訓鍊主簿, 崔處大爲都摠經歷, 洪禹平爲武兼, 朴炫爲五衛將, 李亨命爲宣傳官。
숙종 29년 (1703) 7월 19일
- 昌德宮에 머묾。常參과 經筵을 정지함
- 鄭栻의 세 번째 呈辭와 趙相愚의 두 번째 呈辭
- 外方에 있는 兩司 관원을 제외하고 모두 牌招할 것을 청하는 承政院의 계
- 辭職하는 金構의 상소
- 李海朝가 사은함
- 崔益望 등을 석방하라는 명의 還收, 科獄의 罪人을 酌處하라는 명의 還收, 考官의 獄事를 酌處하라는 명의 還收, 金鎭圭의 遞差, 李裕民에게 속히 올라오라고 下諭할 것, 金相稷의 遞差를 청하는 司諫院의 계
- 李炤 형제를 放歸田里하라는 명의 還收, 任鎭元의 拿問定罪, 魚史徽의 拿問定罪를 청하는 司憲府의 계
- 司圃署의 當該官員 등을 拿問定罪하라고 禮曹의 眞瓜 變通 啓目에 대해 내린 전교
- 該庫의 當該官 등을 拿問定罪하라고 禮曹의 氷丁 引朔 啓目에 대해 내린 전교
- 李濡와 金鎭龜의 첫 번째 呈辭
- 觀象監에서 流星이 나타났다고 아룀
- 南宮埞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
- 趙興璿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
- 정세와 병세를 이유로 遞職을 청하는 金構의 상소